인문학
story in BOOK_ 히잡은 패션이다
수다쟁이들 선생
2025. 2. 9. 11:15
story in BOOK_ 히잡은 패션이다
印尼여성, 히잡의 현주소를 말하다
뜨거운 감자, 종교와 성별
백 년 전에도 지금도, 서양에서도 아시아에서도 ‘YES’와 ‘NO’를 함부로 말하기 힘든 성역이 있다. 종교와 성별이 그렇다. 시대와 지역은 물론이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마디로 뜨거운 감자(?)나 다름없기에 누구든 쉽게 공론화를 끄집어내기 어려운 분야다.
출판물에서는 종종 이 두 가지 주제어가 등장하긴 하지만 ‘창작’이라는 특정 영역을 안고 있는 문학은 독자 개개인의 선택과 호불호가 있을 뿐 논란의 씨앗으로까지 확대될 우려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전문서나 중수필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책이라면 옳고 그름이나 수작과 졸작의 평가 이전에 거대담론으로 확대될 여지가 충분하다. 2018년 6월 서해문집에서 ‘아시아의 미’ 시리즈 여덟 번째 책으로 선보인 <히잡은 패션이다>도 그중 한 권이다,
저자인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김형준 교수는 출간 당시 일들을 이렇게 기억했다.
“욕을 정말 많이 얻어먹었다. 태어나서 50여 년 간 내가 알고 있는 욕은 다 들었던 것 같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책을 집필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방송과 언론에서 큰 이슈로 부각되진 않았지만 출간 이후 2개 월 여 동안 저자는 이메일과 전화에 시달렸다. 근본적으로 이슬람을 불편하게 여기는 집단으로부터는 ‘왜 그 종교를 미화시키려고 하는가?’를 또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서는 ‘이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가 너무 맹랑한 짓을 했다’는 식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책을 정독하지 않고 제목에만 집중한 독자들이 오해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는 입장이다,
역사 속의 무슬림, 여성, 그리고 히잡
‘히잡은 패션이다’. 큰 글씨의 책 제목만 놓고 본다면 저자의 말대로 논란이 일어날 여지가 없지 않다. 부제를 보면 다르다.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의 미에 대한 생각과 실천’이라는 문장은 이 책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얘기인지를 추측케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용 자체가 저자의 생각이나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에서 실체와 현상을 들여다본 것임을 직감케 한다.
첫 번째 파트 ‘히잡, 무슬림 여성의 옷’에서는 이슬람이 등장한 7세기 이전에도 지중해 연안 지역에는 히잡과 유사한 복장이 존재했고 서아시아와 인근 지역의 토착 의상이었다는 사실과 코란에 근거하여 이슬람 사회에서 히잡의 정착 배경과 지역적 환경 요인을 원론적으로 소개한다. 또 히잡, 니캅, 부르카, 차도르, 카마르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히잡을 일러스트와 함께 상세하게 설명한다, 과거 무슬림 여성과 히잡에 대한 서양 남성들의 왜곡된 시선과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 식민지적 불평등상황도 낱낱이 파헤친다.
“서양 남성에게 히잡은 은폐가 역설적으로 가져오는 신비스러움의 원천, 욕망의 대상이었다. 그뿐 아니라 히잡은 미셸푸코(Michel Foucault)가 지적한 권력 관계의 전복을 의미했다”고 서술한다. 또 19세기 무슬림 여성이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이미지화되는 과정에서 ‘오달리스크(Odalisque)’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하렘의 여성들이 화가들의 작품 소재로 수용된 대표적인 예로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를 비롯한 유럽 화가들의 역할이 개입되었음을 밝힌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30여 페이지의 내용만 촘촘히 들여다봐도 종교나 여성에 대한 왜곡이나 편협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다양한 사료를 근거로 히잡과 무슬림 여성들의 불편했던 과거의 기록을 전할 뿐이다.
87%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의 히잡과 무슬림을 인도네시아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 세계 인구 중 무슬림은 24%로 추산되며 단일국가로는 인도네시아가 단연코 1위다. 인구수 약 2억 8천만 명 가운데 87%가 무슬림으로 2022년 기준 전 세계 할랄 소비량의 약 11%를 차지한다. 히잡을 말하기 위해서는 상징성이 충분한 셈이다. 저자가 집필에 펜을 들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문화인류학자인 그에게 인도네시아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나라다. 일찌감치 3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 이슬람에 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자 2년 동안 현지에 거주하면서 연구 활동을 했다.
“당시엔 종교와 지역 특성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었기에 남성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해야 했다. 그러니 인도네시아 여성의 삶과 히잡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2014년 즈음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지도하는 대학원생이 히잡과 여성을 중심으로 한 석사 논문을 준비하자 지도교수로서 갖는 책임감은 그를 다시 인도네시아로 날아가게 했다. 한 달 동안 현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관련 지식과 정보를 얻고 30여 명의 여성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연의 일치이긴 했지만 히잡에 관한 김 교수의 연구와 집필은 때를 제대로 맞춘 격이 됐다. 마침 ‘한국의 미’시리즈 기획 출판 시기와도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미디어, 커뮤니티 타고 공론의 장으로 나온 히잡
사실 히잡을 패션과 뷰티에 연관지어 말하는 것이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일은 아니다. 이미 여러 히잡 전문디자이너들이 이름을 내걸고 활동을 하며 패션쇼도 열린다. 글로벌명품 브랜드 회사인 루이비똥이나 구찌등은 히잡을 만들어 팔고 있지 않던가.
책은 인도네시아 히잡의 역사적 전개를 설명하면서 중반부터는 정보통신과 미디어의 급진전에 편승해 2천년대 들어 출현한 히자버의 출현과 함께 패션으로서의 히잡의 흐름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한다.
무슬림이 지배적으로 많은 인도네시아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고 무슬림 여성은 종교행사가 아닌 일상에서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한다는 규제도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수하르토의 30년 장기 집권체계가 무너지면서 사회 혼란을 불러온 당시의 시대적 상황 즉 일명 ‘미친시대(zaman edan)’가 도래되면서 히잡의 새로운 변화와 역사도 시작된다.
저자는 ‘미친시대와 히잡’이라는 소제목 부분에서 미친시대는 두 가지 면에서 히잡 확산을 도왔다고 밝힌다. “첫째는 종교적 정체성의 표현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히잡 착용을 망설이던 여성이 좀 더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던 여성 중 상당수는 고학력 사무직 여성이었다.”고. 그녀들은 대학을 다니면서 이슬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지만 히잡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직장 내에서 히잡 착용을 꺼리던 중 ‘때는 이때다’라는 식으로 쉽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고 이는 대중적인 히잡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2천년대 들어 바야흐로 전 세계는 정보통신의 혁신과 함께 미디어와 커뮤니티를 활성화되고 있었으니 이 또한 패션으로서의 히잡을 지칭하는 신조어 ‘히자버(hijaber) 당당하게 공론의 장으로 뛰쳐나올 수 있게 한 발판이 됐다. 히자버는 패션으로서의 히잡에 대한 관심을 가진 여성끼리 만나 교류하는 과정에서 등장했고 2011년에는 ‘자카르타 히자버 커뮤니티’가 창립되어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 중심에는 패션디자이너들이 있었고 디안 펄랑이(Dian Pelangi)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2011년부터 히잡 관련 사진을 올리며 수천 건의 댓글 부대를 탄생시킨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무려 420여 만 명에 달했다.
저자는 디안의 패션관은 종교적 색채로 채워져 있고 히자버의 담론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전제하면서 “패션으로서의 히잡에 대한 그녀의 시각 역시 체계화됐다. 이슬람 교육기관에서 수학한 그녀의 경험은 히잡과 관련한 견해를 드러내는데 중요한 자산으로 작용했다”고 서술했다.
이어서 그는 히잡의 공론화가 일어나면서 가슴의 윤곽이 드러나는 옷을 히잡과 같이 착용하는 스타일인 ‘질붑’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서구식 대중문화를 선도한 유명배우 자스키아와 자유주의적이며 관용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종교해석에 앞장선 이슬람자유주의네트워크(Jil)의 목소리도 커졌다는 사실을 전한다. 결국 히잡은 대중들 사이에서 종교와 패션의 영역을 넘나드는 핫한 주인공이 됐고 옹호와 비판이 공존하는 속에서 히잡의 다양화, 패션화, 고급화 등도 진행되었다고 했다.
종교와 패션 그 편가르기를 거부하는 美
후반부 ‘현장에서 본 히잡’ 파트에서 저자는 직접 인터뷰를 통해 인도네시아 젊은층 여성들의 히잡 착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눈만 빼꼼히 드러나는 차다르를 썼지만 색조 화장을 하고 패션 핸드백을 든 여성, 남성의 치근거림이나 성욕으로 가득 찬 시선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는 히잡을 썼다는 인류학전공 여대생, 립스틱 파운데이션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눈 화장까지 하면서 무슬림 교리와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는 히잡 착용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여성 등등.
책은 인도네시아의 현대 젊은 여성, 그들 중에서도 대학생, 전문직 종사자, 모델과 연예인일수록 그녀들이 착용하는 히잡엔 종교적 교리와 신념 지키기 못지않게 패션으로서의 히잡을 추구하고 있다는 현실을 일일이 보여 준다.
저자는 책에는 없는 인도네시아 화장품산업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덧붙여 피력했다.
“할랄화장품 ‘와르다(WATDH)’는 1990년대 출발 당시에는 아주 작은 회사였지만 2천년대 초 다국적기업들이 인도네시아 시장을 점령했던 시기에 ‘이슬람 화장품이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국의 전통기법을 강조하면서 할랄 원조로 급성장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 시장 점유율 20-30%를 점유하는 기업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라고.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는 화장품을 비롯한 패션산업이 히잡과의 공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화장품 업체들의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은 저자의 말을 잘 뒷받침해준다. 국내 제조자개발생산(ODM) 화장품의 대명산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가 인도네시아를 글로벌 할랄 시장의 테스트베드로 삼고 할랄 뷰티 및 건기식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얼마전 한 전시회가가 패션 뷰티전문가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는 지난해 12월 14일부터 3월 17일까지 ‘살람, 히잡’ 전시가 열렸다. 전시 기간 중엔 ‘히잡 퍼스널 컬러 진단 워크숍’이 열렸고 국내 1호 모디스트 디자이너로서 히잡 퍼스널 컬러를 개발한 최윤선 디자이너가 참석자들에게 ‘히잡 퍼스널 컬러’를 진단하기도 했다.
21세기다. 美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종교나 전통방식이 그들만의 테두리에 과연 언제까지 가둘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의 힌트가 바로 이 책 속에 있지 않을까 싶다.
글/박창수 기자
** 이 원고는 2024년 3월 <더케이뷰티사이언스>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