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람을 읽다2 -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 (Gaudi y Cornet, Antonio)
인문학 사람을 읽다 -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 (Gaudi y Cornet, Antonio)
136년째 공사 중인 대성당의 설계자
그는 죽지 않았다’(?)
90여 년 전 죽었지만 그가 설계한 대성당은 건축공사 진행 중
1926년 6월 7일 오후 5시 반경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펠립네리광장으로 향하는 교차로! 이곳에서 한 노인이 달려오던 전차를 보지 못하고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병원에 실려갔을 때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몇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가 작업장으로 돌아오지 않자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수소문을 한 끝에 온몸을 붕대로 감은 그를 찾아냈다. 가우디였다. 사고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고서야 교구의 주교, 시의회 의장 및 시장 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러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틀 후 눈을 감았다. 경가우디의 마지막은 경이로운 건축물들과는 반대로 초라하게 비춰진다. 하지만 죽음은 그의 끝이 아니었다.
스페인이 낳은 천재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바르셀로나에 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가우디는 건축물 외에는 별다른 저서나 강연 등을 남기지 않았을 뿐더러, 자식이나 후계자도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겨놓은 여러 개의 건축물들은 저마다 작품으로서의 존재감을 자랑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주요 관광 루트를 만들어냈다. 90여년 전 그는 죽었지만 사람들은 건축물을 통해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직접 눈으로 만나기 전에는 적잖게 의아해 한다. 대체 어떤 건축물을 남겼기에 스페인 국왕의 이름보다도 그의 명성이 자자한 것일까? 왜 바르셀로나를 가우디가 먹여 살리는 도시라고 말하는 걸까? 에 대해서.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파르게 구엘(구엘공원), 파라시오 구엘, 콜로니아 구엘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바르셀로나시에는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들이 많다, 1년 365일 이 건축물들 주변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중에서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은 추운 한겨울에도 길게 늘어선 줄의 꼬리에 붙어 한참 동안을 기다려야만 티켓을 구입하여 내부를 둘러불 수 있다. 전 세계 여행객들 사이에서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170미터 높이의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작품
사람들은 가우디의 죽음을 쓸쓸하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건축가로 봐야 한다. 그가 설계하여 1882년 3월 19일 성 요셉의 날에 시작된 이 건물의 공사는 136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 시기는 2026년이다. 건축 초기에는 200여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당초 예상했던 건축비에 대한 우려도 사라지고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50여 년은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가우디가 사망한 지 100년 되는 해에 맞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가우디의 건축은 모든 면에서 곡선이 지배적이며, 벽과 천장이 굴곡을 이루고 섬세한 장식과 색채가 넘쳐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또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돌과 타일 철물을 주소재로 사용하여 지어졌으며 굵기가 제각각이거나 휘어진 기둥이 때로는 위로 올라갈수록 굵어지기도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역시 그의 예술적 특징이 한눈에 드러난다. 완공시 높이 170미터가 될 이 건축물은 거대한 옥수수 4개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현장에서 보면 웅장함과 뛰어난 조각미에 숨이 막힐 정도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건물 외벽에는 다양한 무늬와 조각들이 섬세하게 붙어 있다. 4개의 첨탑은 4대 복음 성인인 마태, 눅, 마가, 요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건축비는 관광객들의 입장료로 충당되고 있다. 건축물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완공되지도 않은 건물이지만 이미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외형을 드러내놓고 있으며 그 속에서는 건축이 지속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또는 외벽 속으로 미로처럼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다. 아파트 수 십여층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가면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수 있고 신기하기만 한 공사현장도 관람하게 된다.
칠십 평생 건축 하나에만 미친 건축가, 7개 건축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우디는 오직 하나 건축에만 칠십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구리세공장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셀로나 시립 건축 학교를 졸업한 그는 건축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일생동안 건축 외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글도 쓰지 않았으며 정치는 물론이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가 건축 외에 관심을 가진 유일한 것은 종교였고 이것마저도 그의 건축세계에 녹아들었다. 그는 자연을 통해 영감을 얻어 건축 양식을 만들어갔기 때문에 신이 인간을 통해 창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후문이다. 그의 생각은 오로지 건축으로만 표현되었다.
그는 쇠사슬이 이어져 있는 복잡한 구조를 설계한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은 마치 아치형 다리가 거꾸로 매달린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쇠사슬을 묶는 고정점, 쇠사슬의 길이, 사슬 무게의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해 가장 능률적인 아치 형태를 거꾸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천장에 매달린 쇠사슬이 늘어지고 서로 연결되어 하중을 버티도록 구성돼 있어 모양새도 신비롭기 그지없다. 이러한 형태를 고안하는 데는 수많은 시간과 인내가 걸리는 법.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코로니아 구엘 성당의 ‘매달린 사슬’ 형태를 만들기 위해 10여년의 시간을 바쳤다. 이같은 건물들은 현대의 첨단 장비를 동원해 구조계산을 해도 오류가 발견된 적이 없다. 그의 기하학적이고 포스트 모던적인 건축물들은 얼핏 구조적으로 불안해 보이지만, 그는 컴퓨터는커녕 전자계산기도 없던 시대에 고도의 장인정신과 인내심으로 이를 창조해 냈다.
말년에는 그는 성가족 성당 건축에 모든 정열을 모두 쏟아 부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설계 및 총감독을 하며 지낸 기간만 40여년이 된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의 열정과 작품이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다. 당시는 합리주의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가치는 당시보다는 죽고 나서야 더 높이 평가받고 인정받았다. 1969년 이후 그의 17가지 작품이 스페인의 국립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비롯한 7개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STORY - 손바닥 껍질이 다 벗겨질 때까지 일하다
가우디는 늘 건축현장에서 살았다. 설계 또한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가 진행될 현장에서 했다.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공사비나 날짜에 상관없이 만족할 때까지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했다. 아스토르가에 있는 에피스코팔 궁전을 지을 때였다. 궁전 공사 당시 현관 아치가 약간 앞으로 기울어 제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두 번이나 무너졌지만 가우디는 팔을 걷어붙이고 작업대에 올라섰다. 직접 돌을 들으며 공사를 진행시켰다. 그 날 해가 지고 손바닥 껍질이 다 벗겨질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를 통해 가우디는 인부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