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0여 년 가족사! 그 시간을 깨우다

수다쟁이들 선생 2025. 6. 24. 12:24

80여 년 가족사 그 시간을 깨우다

 

충북의 작은 산간마을에 자리한 시골집은 부모님이 우리 형제 오남매를 낳고 키운 곳이다. 어느새 70대 중반이 된 큰형님과 칠순을 맞이한 큰누님 그리고 그 아래로 두 살 터울로 이어진 작은 누나와 작은형, 환갑의 나이가 된 막내인 나까지.

 

부모님이 작고하신 지 어느새 20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건만 집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은 무너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요양차 시골살이를 하는 이들이 집을 대신 지켜줬건만 한동안 비어 있었다. 관리도 힘들고 그렇다고 누가 내려가 살 수도 없는 상황이니 집은 그렇게 혼자서 외로운 날들을 보내면서 지붕도, 보일러실도, 벽도 조금씩 내려앉았다.

 

지난해 고향 친구로부터 ‘너희 집 부동산에 내놓았더라’는 말을 듣고 못내 서운함

과 아쉬움이 뒤엉켰다. 집은 서류상으로는 큰형의 명의로 돼 있지만 이미 장손인 40대 초반의 조카의 것이나 다름없건만 그 집이 팔리면 부모님의 삶과 형제들의 유년기 소년기도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삼월, 봄바람만큼이나 훈풍의 소식이 들려왔다. 집을 팔지 않고 조카가 거금을 들여서 집을 개보수한단다. 조카와 큰형님 내외가 하루가 멀다하고 서울서 승용차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집을 오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6월 14일 오남매가 시골집에 모였다. 마침 큰 누님 칠순이어서 함께 밥도 먹고 수리로 새롭게 태어난 집에서 부모님 생각도 하고 저마다 성장기 옛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기로.

 

이미 한번 리모델링을 했던 집이다. 큰 틀은 그대로 두고 안방과 뒷방을 트고 천정의 서까래 몇 개가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 모든 창문을 다시 달고 주방과 욕실도 인테리어로 새롭게 태어났다. 한마디로 겉으로는 기와집 한 채이지만 내부는 짜임새있고 나름 아늑한 펜션으로 거듭났다.

형제들은 이런저런 얘기로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누며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은 동네사람들을 불러 아침 식사도 대접했다. 귀가 후 조카에게 문자를 보냈다. 부모님의 가장 큰 유산인 집과 우리 형제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주는 큰 일을 해줘서 고맙다고. 그러자 조카의 답변이 도착했다.

 

“삼촌 고모들이 덕담을 해주시니 뿌듯합니다. 아무리 잘 지은 집이라할지라도 집은 사람이 살아야 생기를 유지하니 가끔씩 내려가 쉬시면서 마당에 풀도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