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버스 타GO 글 쓰GO
수다쟁이들 선생
2022. 4. 30. 10:51
버스 타고 원고 한 편
"글 쓸 시간이 없다고요?"
"글감이 떠오르지않는 거겠죠ㆍ 요즘같이 스마트한 시절에 .ᆢ"
참 좋은 세상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수있으니까. 지구촌 어디를 가든 메모지와 펜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고 전송도 할 수 있고 온라인공간에 편집까지 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글쓰기 수강생들에게 자주 하는 잔소리 중 하나가 시간이 없으면 대중교통 안에서라도 글을 써보라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일이다. 지금 대학교 3학년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으니까. 몇년 째 흔한 미술학원에서 창의미술까지 찾아다니며 미술을 취미 그 이상으로 좋아하고 나름 소질도 보였던 녀석이 예술중고등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단다. 집은 못 사줘도 아니 그럴 능력도 안되고 설령 된다고해도 자식에게 집 사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게 내 신조였다. 다만 아이가 원하는 꿈을 꿀수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했던 터였다.
11박 12일 스페인여행을 함께 떠났다. 장래 희망이 미술분야라면 피카소의 그림, 가우디의 건축물을 눈으로 보고 정말 미술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아울러 거장들의 작품세계를 느껴 보라는 의도에서였다. 아이들의 꿈은 성장과정에서 몇번이고 바뀐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 먹었을 때 실행으로 옮겨보기로 했던 아빠의 이벤트였다. 지금 수학을 전공하고 있는 녀석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너무 성급한 결정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때의 여행에 대한 후회는 없다. 적어도 책이 아니면 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대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았고 세계적인 박물관과 반고흐 전시까지 두루두루 투어를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푸짐한 여행이 아니었던가.
이미 한 차례 다녀온터라 나름 현지 정보나 상황에 접근이 용이했기에 녀석을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는것 쯤이야 자신이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사흘간 스톱오버를 하고 마드리드로 들어갔고 그 다음엔 바르셀로나로 이동해 그곳에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라고 하지않던가? 비싼 돈 들여 떠난 여행에서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잡지사에 기고할 원고 한 두편 쯤이야 쓸 수있고 그 원고료 정도면 숙박비는 해결이 가능했다.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고속버스로 8시간. 옆자리에 앉은 아들이 먹고 자고만 반복하고 있는 동안 폰 메모장을 이용해 원고 한 편을 완성했다. 원고지 24매 분량으로 ㅡ지금 마드리드의 유통가는ㅡ 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쓰는데는 세 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문학 작품이 아닌 잡지에 편집될 기사인 만큼 취재한 내용 그대로 옮겨적는 일이니 속도를 낼수 있었다. 버스안에서 작성한 원고는 복사하여 메일로 전송했고 그날밤 숙소 컴퓨터에서 교정을 본 후 잡지사로 전송했다.
4월의 마지막날 토요일 아침이다. 연세대 인근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나온 김에 영화나 한 편 보고 들어가지는 생각에 종로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글쓰기 제자들에게 했던 잔소리를 떠올리면서 버스 안에서 이 원고의 절반을 썼다. 탑승 후 을지로 2가 청계천 변까지는 이동시간이 다소 짧아 원고의 절반밖에 쓰지 못해 나머지는 커피점에 들어가서 글을 이어갔다.
"글쓰기 선생이니까 . 작가니까 짧은 시간에 이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글쓰기는 테크닉이나 머리로만 되는 일이 아니기에 이렇게 말하는 그 누구에겐가 전하고 싶다.
"글쓰기는 쓰는 사람의 열정 투자하기 나름이랍니다. 습관이고 시간이죠"
폰으로 글을 쓰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가 않다. 처음엔 작은 글자 터치가 쉽진 않지만 이 또한 익숙해지면 컴퓨터 자판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글을 쓸수 있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상품구입도 잘 하지 못하는 내가 글쓰기는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러하니까.
220430 청계천 커피점에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