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메멘토 모리

수다쟁이들 선생 2022. 5. 2. 08:52

울면서 왔으면 웃으면서 가야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옛날 로마에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한 장군이 시가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는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이 다섯 글자를 외치게 했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 말 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단지 죽는다는 의미를 뛰어 넘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고 너도 언젠가는 죽으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메시지였다.

미국 남서부 지역에 거주해온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인디언 부족중 하나인 나바호족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들은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는 말을 한다.

아기는 태어날 때 울어도 그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은 새 생명의 탄생을 웃음으로 축하하지만 죽을 때는 나는 웃고, 주변 사람들이 다 슬퍼해야지 이게 반대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만큼 잘 살았으니 웃으며 떠날 수 있어야 하고, 오히려 보내는 이들은 존경과 사람의 마음으로 울게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일 뿐만 아니다. 일상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물론이고 사랑도 그렇다. 문을 열고 들어온 후 닫지 않으면,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물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말한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맺음은 더 중요하다고. 저마다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자라고 청년이 되어 사회활동을 하고 중장년을 거쳐 열심히 살다보면 노년기를 맞이한다. 흔히 말년에 고생이 없어야 하고, 험한 일을 겪지 말아야 인생을 잘 살았다고들 한다.

평균수명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고령사회를 향해 치닫고 있지만,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가 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상과 작별을 해야 한다. 내 삶에 후회나 미련, 또는 다른 이들에 대한 미안함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후세들에게 존경받고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으로 남으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그 인간 잘 죽었어라는 험한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너도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메멘토 모리’, 나도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오늘의 삶속에서 긴장을 하고,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현대인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나름 바쁘게 살아간다. 일을 많이 하고 열정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특히 3040대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메멘토 모리는 남의 일이다. 5060대가 되면 달라진다. 인생의 절반을 넘었다는 생각과 함께, ‘노년기죽음같은 언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안타까운 일은 그 때 뿐이라는 것이다. 가령 가족이나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잊어버린다. 지나치게 현실에만 급급해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한 번쯤은 매우 진지하게 메멘토 모리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누구든 죽음 앞에서 초연해지기란 쉽지 않다.

오래 전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였다. 제 엄마한테 죽음이 무엇인가를 물었나 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다 죽으며 한 줌의 흙으로 남게 된다고 했더니 갑자기 아이가 울더란다. 그 후로도 아이는 죽음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 죽는 거 싫어, 무서워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평생 교회나 절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60이 넘어서 어느 날 갑자기 종교를 택하곤 한다. 누군가 말하기를 노년의 외로움과 고독, 노쇠해져가는 육체 그리고 그림자처럼 조금씩 다가올 죽음 앞에서 두렵기 때문이란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이란 언어 앞에서 결코 흐믓해질 수는 없다. 세상과의 작별로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데 그게 즐거운 일은 아니잖은가. 다만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할 뿐이다. 또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불변의 법칙 앞에서 가족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흉한 모습 보이지 않고, 뭔가 의미있게 또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남은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노년기로 접어들수록 나는 정말 잘 살았는가?’,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인생2막의 시간을 보낼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야 한다. 아쉽게도 이것을 놓치고 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자각과 자기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젊은 날처럼 현실에 급급해하거나 내일 무엇을 더 채워야겠다는 욕심의 그릇을 비우지 못한 게 분명하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이라는 말을 한다. 한 번 소풍처럼 다녀가는 우리네 삶이지만 후세들에게 소중한 분이 떠나셨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후회 없는 인생을 산 게 아니겠는가? 한 철학자가 했던 이런 말이 기억난다. 사람들은 불행하다’ ‘불행하다말하는데, 99개 불행이 있어도 그 중 하나는 반드시 길()하고 기쁜 일이 있단다. 그러니 막막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한 점의 빛만 있다면 슬퍼 말고 실망하지 말라고.

 

 

Think about it 메멘토 모리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 인간은 불사조가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는다.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이 때문에 종교에 의지하는 이들도 있는데, 차라리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종교에라도 의지하는 것은 다행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삶의 자세가 달라지게 된다.

 

어른답게 살고 있는가?

: 언젠가는 세상과 작별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있으면 내 욕심을 버리고 나를 낮추는 삶, 그리고 모범이 되는 하루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어른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을 헐뜯고, 돈에 집착하고, 나만 행복하기 위해 불법을 자행하는 일은 노년일수록 멀리 해야 한다.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 나바호족들이 강조하는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그 명언처럼, 삶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떠날 때 나는 열심히 아름답게 잘 살아서 웃으며 떠나고, 나를 보내주는 남은 이들은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슬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른으로서의 모범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후세들이 존경할만한 그 뭔가를 남기고 떠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저분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늘 베풀고 나누고 살았는데, 저분이 떠나시니 진정으로 마음이 아프다이런 말을 듣자.

 

* 박창수의 <유쾌하게 인생을 즐기는 53가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