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인물탐구 ‘황금인생’8 _ 디피코 송신근 대표

수다쟁이들 선생 2022. 5. 25. 21:53

초소형전기차 시장 연

"나는 지금 행복한 사람"

 

중소기업이 전기차를 만든다는 얘기가 몇 년 전부터 이슈가 됐다. 몇 안 되는 이들 기업 중에서도 초소형 전기화물차 포트로(POTRO)’를 내놓은 디피코(DPECO)는 단연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강소기업이다. 디자인과 설계는 물론이고 생산 공정설계능력 일체를 자체 보유한 회사라는 점과 국내의 70여 부품생산 협력사들과 부품을 공동으로 개발하여 전체 부품의 85%를 조달받는 있다는 점 그리고 CEO 송신근 대표가 자동차분야 46년 경력의 엔지니어로서 대한민국 판금 명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두 번의 터닝포인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CEO이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글 박창수 기자

 

지난 달 7일부터 10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는 제8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IEVE)가 열렸다. 횡성군 홍보부스를 방문한 야당 대표와 횡성군수가 초소형 전기화물차 포트로를 시승하고 인터뷰하는 모습이 메스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참관객들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본 국민들의 시선을 한껏 주목받았다. 올해로 창업 23주년을 맞이한 디피코가 직접 생산한 전기차다. 설계부터 최종테스트까지 이 차의 전 공정 설계와 생산라인을 구축한 장본인이 바로 송신근 대표다.

기아자동차에서 22년 간 생산기술업무에 몸담았던 송 대표는 지난 19987월 디피코를 창업했다. 당시 부장이었던 그는 부도난 회사의 현장 마지막 정리까지 책임을 다 한 직후였다. 자동차 엔지니어링 전문회사로서는 유일무이했다. 가까운 일본 만해도 여럿 됐지만 자동차 선진국들과는 달리 국내 분위기는 기술유출을 우려한 나머지 엔지니어링을 외주에 맡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가 겨냥한 타깃은 해외시장이었다. 먼저 일본시장에 진출한 후 중국과 인도시장으로 고객사를 확보해나갔다. 20여 년 간 엔지니어링 전문회사로 승승장구했다. 20162천 만 불 수출탑까지 일구었다. 하지만 중국과 사드문제의 불똥이 튀면서 사업의 변화가 요구됐다. 이듬해부터 방향을 제조업으로 전환했고 이것이 디피코를 전기차생산회사로 재탄생시킨 출발점이 됐다.

송 대표는 자신에게 있어서 늘 위기는 기회가 됐다고 말한다. 2017년 전동형스쿠터 휴모빌(HUMOBILE)을 개발 생산한데 이어 이듬해엔 초소형화물 전기차 포트로개발에 들어가 지난해 6월 강원도 횡성 우천산업단지 15천 여 평 부지엔 용접, 도장, 조립, 테스트 등 전 공정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생산을 시작했다. 자동차 디자인과 공정설계 기술은 물론이고 전체 생산라인과 주행테스트 도로까지 갖춘 명실공히 전기차 생산업체가 됐다. 46년 간 쌓아온 자동차엔지니어링 노하우를 고스란히 담아낸 전기차 포트로는 송 대표의 작품(?)이다.

 

나는 자동차 1.5세대, 명장이자 엔지니어다

저는 한국의 판금 명장이자 한국자동차 1.5세대 엔지니어 입니다. 제 인생 자체가 자동차 속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말수 적은 그 이지만 어디서 누굴 만나든 자신있게 하는 말이다.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자동차 생산기술과 그 현장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기계공고 배관과 3학년 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대표가 된 학생 송신근은 졸업 후 기아자동차에 입사하여 1975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2회 대회에서 판금분야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재학 기간 내내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였고 제품 설계와 개발을 익힐 수 있는 전공분야에 심취해 있던 만큼 기능도 뛰어났다. 하지만 그는 동메달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했고 저도 자신감이 넘쳤어요. 하지만 경기 첫날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반성했죠. ‘자만하지 말고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었어요. 아마 그때 금메달을 따서 자만심에 넘쳐 우쭐댔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귀국 후 바로 기아자동차의 생신기술부 치공구 장치설계 분야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과 연습이 현장의 실무와 차이가 있었다. 현실자각을 하면서 기술을 익혔고 야간엔 경기공업전문대학(경기과기대)과 서울산업대학교(서울과기대)에서 부족한 지식을 채워나갔다. 청년이었기에 미래에 대한 고민도 컸던 터라 20대 후반 2년 간 교사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그는 천생 엔지니어였다. 성체가 되면 다시 강으로 회유하는 연어처럼 기아차 현장으로 복귀했다. 부서장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판금, 도장, 설비 등의 핵심 생산 공정설계 기술을 꿰차게 되었지만 IMF 위기 시 안타깝게도 회사는 부도가 났고 나이는 40대 중반에 들어서 있었다. 얘기치 못한 인생 터닝포인트에 맞닥뜨렸다.

재직시절 일본의 자동차시장을 지켜보면서 한국은 왜 엔지니어링 전문회사가 없는가에 대해 의문점을 던지곤 했죠. 기술 유출을 두려워하는 국내기업들의 폐쇄적인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해보겠다는 그런 생각이 있었거든요

1998년 디피코를 창업했다. 당시 자동차 생산 공정 설계 작업에 있어서 한국은 아날로그방식인 2D설계 작업만을 고집하고 있던 일본보다 속도 면에서 한 발 앞서 있었다. 바로 디지털화로 가는 3D설계였다. 처음부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면서 인도와 중국시장까지 확대해 나갔다. 2009년 자동차 엔지니어링 회사로 명성을 얻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2006년부터 3년에 걸쳐 중국 질리(吉利)자동차의 신차 ‘EC7’ 디자인에서부터 공정설계를 비롯해 최종 테스트 전 단계까지의 설계를 책임졌다. 이 차가 히트를 치면서 중국시장에서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그 후 북경자동차의 ‘X55’제품도 디자인에서부터 전 공정 까지 설계를 맡았고 마찬가지로 인기 모델이 됐다.

회사만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엔지니어로서 송 대표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2009년에는 기능한국인이 됐고 2011년에는 판금 대한민국명장에 올랐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2013년에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한 최고의 기술인 20명에도 속해 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놓쳤지만 되레 자신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자만하지 않고 보다 신중을 기하며 일에 몰두한 결과 엔지니어로서는 최고의 인정인 명장까지 오르게 된 게 아니겠냐고.

 

초소형경차로 전기차 틈새시장을 만들다

엔지니어로서의 최고봉에 오른 그였지만 완성차를 직접 생산하겠다는 욕심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 전문회사로서 브랜드를 키워가겠다는 것 뿐 이었다. 2016년 즈음엔 직원 수 만 200여 명에 달하는 전문기업으로 성장했고 이때까지 매출의 100%가 해외외서 발생했다. 국내 매출은 제로였다. 하지만 다시 그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

중국시장에서 우리 회사와 기술력에 대한 인정과 신뢰도가 높았지만 사드문제는 저로 하여금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언제까지 그들의 눈치에 이끌려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마침 전기차 시장이 도래됐고 우리는 디자인부터 완제품 테스트까지 기술력을 모두 갖추었으니 완성차에 도전한 거죠.”

4년 전이었다. 자녀들은 다 성장했고 대한민국 명장으로서 6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으니 돈과 명예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업계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놓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메이저 자동차기업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았고 그것은 초소형전기차 시장이었다. 2017년 개발 생산에 이어 곧장 판매에 들어간 전동형스쿠터 휴모빌(HUMOBILE)는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는 마중물 정도로 삼았다. 목표는 완성차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내 메이저사를 제외한 일부 자동차생산 메이커들은 완성차 생산의 필수 라인으로 통하는 용접과 도장 자체라인을 갖춘 회사가 없다. 또 부품 다수를 중국 등에서 들여와 조립을 하는 곳이 대다수다. 현지 부품업체가 사라지면 A/S 문제가 불거지기 마련이다.

이듬해 본격적으로 개발에 뛰어든 송 대표는 먼저 자사의 설계에 따라 부품을 공급해줄 70여 개 협력사를 구성했다. 부품이 3천 여 개 이상으로 협력사들들은 전량 국내 생산된 부품들을 모듈화하여 디피코에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체 생산 시설은 강원도 횡성군 우천산업단지에 구축돼 있으니 생산은 시간 문제였다.

지난해 시장에 첫 선을 보인 포트로(POTRO)’는 소형물류에 적합한 차량이다. 현재 전국 18개 대리점을 통해 픽업과 탑차 2종류가 판대 되고 있지만 차량구매 후 소유주의 편의에 따라 캠핑차량으로의 변신도 가능하다. 환경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는 전기차 특성상 올해는 1천 여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부터는 판매대수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자체별 보조금 지원의 차이가 있어 강원도의 경우 부가세 10%까지 환급받으면 2167만원인 차를 680만원에 구입 가능하다.

유럽으로 샘플 차량이 출하됐어요. 올 하반기 중이나 내년 초에는 동남아와 유럽시장으로의 수출이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국내에서는 지영업자들 외에도 B to B시장 판매 확대가 본격화 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매출이 1200억 원 대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직원들과 공생, 협력사와 상생이 필수다

디피코의 기술력은 경차에 한정되지 않고 일반 승용차와 버스까지 설계 및 자동차개발이 가능하다. 실제로 중국기업에 중형(8,5m) 전기저상버스 생산 아웃소싱을 통해 현지 생산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회사의 인지도와 판매망 그리고 A/S 체계등 제반 인프라 정비가 되지 않았기에 대기업과의 경쟁을 피한다는 전략이다. 송 대표는 무엇보다 초소형 전기화물차 시장이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자긍심이 크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업의 지속경영을 위해 고수하는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고 밝힌다. 바로 다함께 가는 길 공생과 상생이다.

기업은 내적으로는 직원들과 함께 외적으로는 고객과 함께 변함없는 마음으로 가야만 지속경영이 유지된다고 봅니다, 공생과 상생을 CEO로서 제가 지켜야할 사명이자 경영철학입니다. 지난 23년간 그렇게 실천해 왔고 또 앞으로의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죠

그는 디피코 창업 시부터 333원칙을 경영철학이자 기업문화로 실천해온 CEO, 이익분배 시 직원, 주주, 회사(재투자) 3자가 공히 30%씩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다. 이를 통해 회사는 직원들과의 공생과 신뢰를 유지해왔다. 30여 년 전 기아자동차 시절 만난 후배와 동료 8명이 지금도 함께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디피코는 2024년부터는 70여개 협력사들과 이익공유제를 실천하기로 약속했다. 전 부품 국내기술과 생산을 통한 A/S약속은 1차 고객인 협력사들과의 상생이 우선되야 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에게 성공적인 전기차 솔루션을 제공하고 협력하여 상생하는 꿈의 동반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강한 송신근 대표. 그간 자동차시장에서 소외돼온 특수시장을 소량다품종 전략으로 추진하면서 디피코를 글로벌 이모빌리티 제조기업으로 이끌어가겠다고 말한다. 그에게서는 비즈니스의 성공 못지않게 자동차업계 엔지니어 선배이자 명장으로서의 사명감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엿보게 된다.

 

송신근 대표의 삶과 경영

 

예전부터 일밖에 모르는 사장님이라는 소문이라는 자자했다고 합니다.

맞아요. 취미가 뭐냐고 말하면 일이라고 답하죠. 사실이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제 직업에 만족하다보니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일에만 빠져 살다보니 놀 줄을 모르는 사람이 됐지만 그래도 저 개인적으로는 후회가 없습니다. 특히 요즘은 회사 방문객도 많아져 낮 시간엔 제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어요, 그러다보니 늘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있죠. 하지만 후배들에겐 자기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죠. 여유를 갖고 워라벨을 즐겨야 한다고 봐요. 꼭 나와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판금 명장으로서 한국잡월드에 있는 청소년체험관설립 제안을 적극 권유했다고 하던데요?

사람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 공고 입학 시 자신의 적성과 현장 세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전공과를 정해서 들어가는 편이었어요. 현장탐방 체험학습과 기초교육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판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다행이도 입학 후 6개월 간 다양한 체험을 한 후 전공학과를 선택하는 공고를 다녔습니다. 판금 명장이 될 수 있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중에 후회가 없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니 10대 청소년들에게는 꼭 필요한 곳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을 꿈꾸고 있습니다. 첫 번째 조건으로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자신의 일에 미쳐야 합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미쳐서 일한 사람들이거든요. 미치도록 파고 들고 혼신을 다 쏟아야만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죠.

 

평소 엔지니어로 일하는 후배들이나 젊은 CEO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먼저 늘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산업 변화에 있어서 불과 3-4년 전과 지금은 크게 다릅니다, 그야말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입니다. 과거의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만 믿고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대처해나가야 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패밀리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배는 후배에게 자신의 노하우와 기술을 가르쳐주고 후배는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현장에서의 공생이라고 봅니다. 많은 이들이 기술에는 비밀이 없다는 열린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종종 대표님 다른 회사에서 다 카피할수 있습니다라면서 생산현장 공개를 우려하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저는 다 공개하라고 합니다. 누군가 베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면 되는 겁니다.

67세입니다. 경영 못지않게 건강관리도 중요한 시기가 아닌지요?

아직까지는 성인병이 하나도 없습니다. 특별히 운동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 건강은 타고 났는지 문제가 없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 저는 주거환경에는 신경을 씁니다. 지난해 회사 인근으로 이사를 왔는데 정말 공기 좋은 곳이죠. 수 십 년을 수원에서 살았는데 그때도 저는 산과 가까이 외곽에 살았어요. 살던 곳이 개발되면 산 쪽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는 식이었죠. 자연과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먹고 자는 게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도 듭니다.

* 이 원고는 박창수 기자(작가)가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중소기업경영경제전문지 월간<기업나라> 202111월호에 기고했던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