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그때 그 사람2 - 비나텍㈜ 성도경 대표
미션으로 세운 기업문화, 세계 1위 슈퍼커패시터 만들다
24년 전에 창업해 소형 슈퍼커패시터 세계 1위 회사로 확실하게 도장을 찍으면서 소재부품 강소기업을 만들어낸 비나텍㈜의 성도경 대표. 그가 손꼽는 성공 포인트는 기술력 말고도 독특한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미션을 이행하는 비나텍의 기업문화다.
@ 2020년 4월 전북 전주시에 자리한 비나텍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었고 이 원고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월간 경영 기술 전문 잡지 <기업나라> 5월호 <나는 경영人>에 실렸던 기사다.
매출 목표 이전에 미션을 고민했다
“매출 몇백 억 올리겠다는 야망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일류기업이자 장수기업을 꿈꾸는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미션입니다.”
성도경 대표가 창업을 한 계기는 재직 중이던 회사에서 자신의 목표가 사라진 것. 그래서였을까? 1999년 창업과정에서 그가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Why’와 ‘How’에 근거한 미션을 찾는 일이었다.
전북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의 목표는 대학원 진학 후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원 진학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중소기업 연구소로 발길을 돌렸고, 3년 후엔 대기업 전자부품 계열사로 이직했다. 10년간 생산과 영업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일했지만 높은 업무 실적에 비해 진급은 더뎠고, IMF를 계기로 새로 취임한 CEO의 출신학교 편향주의적인 인사정책은 성 대표의 창업을 재촉했다. 여기까지는 누군가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직장인의 흔한 스토리다. 성 대표의 창업이 남달랐던 것은 이때부터였다.
“13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직원과 경영자의 입장 둘 다 생각할 수 있는 경력자인 만큼 창업에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왜 사업을 하고, 회사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미션을 정했어요. 나도 직원도 일에서 행복해야 한다, 그 가운데 회사가 발전하고 그 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비나텍의 주력제품은 슈퍼커패시터(super-capacitor, 초고용량커패시터)다. 슈퍼커패시터는 순간적으로 많은 전기에너지를 저장한 후에 높은 전류를 순간적으로 또는 연속적으로 공급하는 고출력·장수명의 친환경에너지 저장소자로, 현재 스마트 그리드, UPS, 풍력발전기, 자동차 분야에 주로 사용된다. 생산 제품의 90%는 인도, 중국, 미국, 베트남, 유럽 등으로 수출된다.
그렇다면 21년 차를 맞이한 비나텍의 미션은 창업 당시 성 대표가 계획한 대로 실행되고 있는 걸까? 대졸 신입사원 연봉이 4,000만 원으로 전라북도 내 중소기업 중 급여 수준이 최고인 비나텍은 지난 1월에 전년도 성과급으로 170여 명의 전 직원에게 총 5억 원을 지급했다. 구내식당은 케이터링 전문회사가 운영해 고품질 식단은 물론이고 식후 디저트와 영양제까지 제공한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최상급의 복지이니 ‘회사가 발전하고 직원이 행복한 회사’라는 미션을 실행하고 있는 게 맞다.
또 하나의 미션인 사회 환원도 엄격하게 실천 중이다. 성 대표를 포함한 전 임직원은 연간 24시간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매년 전주 시내 저소득층 200여 가구에 직접 담은 김장김치와 쌀을 전달한다. 지난해엔 전북대학교에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5,600만 원의 발전기금을 기탁했고, 최근엔 코로나19 피해 성금으로 전주시에 500만 원을 기부했다.
성 대표는 말한다. 회사 설립 당시 미션을 정확하게 세우지 않았다면 직원들이 웃으며 일하고 사회 환원에도 앞장서는 비나텍의 오늘을 만들지도 못했고, 지속 성장의 길을 지켜오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후회 없을 만큼 R&D에 쏟아부었다
비나텍의 출발은 제조업이 아니었다. 탄탈륨 커패시터 유통업이었다. 당시 친구와 한 사무실을 쓰면서 고용한 여직원 한 명도 양사 협업 직원으로, ‘1.5인 창업’이었다. PC, 이동통신기기, 카메라에서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국내 제품만으로는 부족해 미국, 일본 제품까지 수입해서 판매했다. 나홀로 영업으로 월 매출 20억 원을 올린 놀라운 실적의 이면에는 성 대표의 역발상 영업 테크닉이 숨어 있었다.
“당시 영업 담당자들은 거래처 구매 담당자를 만나거나 그 윗선 로비를 했죠. 저는 거꾸로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방문하면 먼저 품질검사 담당자를 만나고, 자재 담당, 개발자를 만난 다음 맨 마지막에 구매 담당자를 찾았어요. 그 회사가 필요로 하는 부품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사전에 점검, 분석한 후 구매 담당자와 미팅을 하니 당연히 성공적이었죠. 1주일에 한 번씩 각 부서 담당자들을 만날 때마다 1,000원짜리 호두과자 한 봉지씩 건넸습니다. 인간적인 정을 중시했죠.”
전 직장에서 익힌 생산영업 경력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접목시킨 영업 능력은 3년 만에 수십억 원의 큰돈을 만들어줬고, 2003년에는 군포에 아파트형 공장을 확보해 제조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아이템은 세 가지였다. 탄탈륨 커패시터 유통과 LED 조립, 그리고 지금의 주력제품이 된 슈퍼커패시터 개발이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슈퍼커패시터를 개발하기 위해 R&D 투자를 감행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LED 부문은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불어닥쳤을 당시 매출은 80억 원, 직원 수는 80여 명 규모였다. 최대 자금줄이던 탄탈륨 커패시터 수입 유통 분야에서 환율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직원들 월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과장급 이상 직원들 대상으로, 직급별로 3개월간 임금 일부만 지급했습니다. 저는 아예 못 받았고, 부장과 차장은 50%, 과장은 70%로 차등을 두었죠. 결혼한 직원들에게는 그 배우자들에게 일일이 제가 손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3개월만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요.”
그의 진정성은 통했고, 약속대로 밀린 임금을 3개월 후 전액 일시불로 지급했다. 지금의 코로나19 위기와 같은 힘든 상황을 미리 경험한 셈이다.
출렁이는 물은 고요해지려고 흔들린다는 말처럼, 회사는 안정을 되찾았다. 7년간 돈을 쏟아부은 슈퍼커패시터의 매출이 상승세로 접어들었고, 적자가 누적된 LED부문은 과감하게 접었다. 그리고 2011년 지금의 사업장인 전주로 이전 확장을 감행했다. 이때부터 비나텍은 슈퍼커패시터로 소재부품 강소기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R&D 투자는 전주 이전 후의 10년이 전부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일본 마쓰시타 연구소장 출신의 고급인력을 초빙해 매월 일주일씩 직원교육을 실시했고, R&D 고급인력만도 30명을 확보했다.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면 3개월을 날마다 찾아가 설득해서라도 반드시 끌어들이는 데 정성을 쏟았다. 그 결과 비나텍은 지난해 ‘소재부품 강소기업 100’으로 올라섰다.
중소기업에 맞는 기업문화를 이식했다
비나텍의 전주 본사 공장동 1층에는 폭 1,5m, 길이 70여m의 이색공간이 있다. 이 회사 독서경영의 산증인이 되어주는 3,000권이 넘는 서고다. 전주로 이전 확장하면서 성 대표는 미션을 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독서경영이었고, 비나텍만의 기업문화 형성의 시발점이 됐다.
‘독서와 수요아카데미’는 비나텍의 기업문화를 이끄는 주축이다. 전 임직원들은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한다. 독후감은 전 직원에게 공유되며, 상·하반기로 나뉘어 연 2회 《비나가족 독서문집》으로 발간되어 사내 비치와 함께 방문객들에게 선물로 지급된다.
수요아카데미는 매주 수요일에 한 시간씩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매월 첫 주는 독서토론으로 전문가 3명을 사내로 초빙해 그룹별 독서토론을 진행한다. 두 번째 주는 기술분야 특강으로 대학교수 및 해당 전문가를 초빙해 진행되며, 세 번째 주는 인문학으로 심리학, 문학, 역사 전반에 걸쳐 외부 강사로부터 강연을 듣는다. 그리고 네 번째 주는 임직원이 사내 강사로 나서며 본인의 업무에서 채득한 전문지식을 발표하고 공유한다. 독성경영은 10년째 이어져왔고, 수요아카데미는 240회를 넘어섰다. 회사로서는 적잖은 비용과 시간 투자가 필요했으며, 직원들로서는 좋든 싫든 반드시 참여해야 했다. 그러니 입사 초년병 중 누군가는 “할 일도 많은데 무슨 독서고, 무슨 특강이 필요해?”라고 투덜대기 마련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퇴사하지 않을 거면 회사 시스템에 젖어들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임직원 스스로 자신들의 지식과 생각이 보이지 않게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기업문화요? 만들기는 쉬워도 사라지는 것 또한 순식간입니다. 몇 년 지속한다고 해서 문화로 형성되지 않아요. 최소 10년 이상 꾸준히 이어져야 합니다. 회사로서는 투자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해가 갈수록 조직의 결속력 강화, 개인의 발전, 기업문화의 자리매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비나텍의 기업문화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입사자는 분기별로 2박 3일 워크숍에 참여해 마지막 날은 회사까지 50㎞를 도보로 행군한다.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10㎞ 단축마라톤을 뛰어야 하며, 매일 감사노트도 작성한다. 연 24시간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활동은 분기별 개별 참여 4시간, 상·하반기 전체 참여 8시간으로 짜여 있으며, 요양원, 보육원, 지체장애인 시설 등에서 청소, 세탁 등으로 펼치는 만큼 한번 다녀오면 몸살이 날 정도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 같은 기업문화 활동에 참여하면서 ‘함께’라는 경험을 축적할 뿐 아니라 소통과 화합을 만들어낸다. 봉사활동에는 가족들까지 동참하는 분위기다. 대기업도 따라잡기 힘든 다양한 기업문화를 이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성 대표의 입장은 단호하다.
“기업은 사람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이끌어갑니다.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죠. ‘함께’라는 가치를 즐길때 행복한 삶이 주어지거든요. 그것이 바로 우리 회사의 미션이고, 미션은 다시 성장동력으로 활용됩니다.”
내일을 향한 투자는 계속된다
슈퍼커패시터는 이제 시장 확장기에 접어들었다. 이 제품은 크게 세 가지로, 작은 용량으로 RTC 백업용으로 쓰이는 코인 타입, 전동차 등에 적용되는 대형 타입, 그리고 소형 타입인 래디얼이 있다. 현재 비나텍은 중소형에 집중해 연간 600억 원 물량의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등록된 특허건만도 150건에 달한다.
비나텍은 오는 6월까지 생산, 수출될 물량은 이미 수주를 끝낸 상태이며, 올 매출은 전년대비 33%의 성장을 예상한다. 다만, 최근 국내외 경제위기 상황으로 인해 기업들의 위기경영이 화두인 만큼 사내에서도 긴축 경영과 위기 대응을 거론하는 임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성 대표의 전략은 무엇일까?
“위기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슈퍼커패시터 시장의 큰 문이 열리는 중인데 여기서 머뭇거릴 수는 없죠. 베트남 공장으로의 인력 파견이 지연되고 있고, 수출 국가에 따라서 일시적으로는 수주받은 물량 납기가 연기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장기적인 비전을 보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해야 합니다. 위기가 끝났을때 준비하면 한발 늦습니다.”
13년 전에 큰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가진 성 대표는 올 들어 R&D 신규 인력 10명을 이미 채용한 데 이어 지금은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는 현재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수소연료전지 시장이 미래의 더 큰 먹거리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따라 최근엔 코스닥 이전 상장 신청 준비를 완료해놓고 상장 시기만 엿보고 있다.
학창시절, 한때 국어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성도경 대표. 그는 중소기업으로서 비나텍이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힘은 다름 아닌 기술력과 기업문화에 있었다고 못 박지만, 그의 내면에는 이미 준비된 자만이 펼칠 수 있는 감성마케팅 능력과 감성 CEO로서의 잠재력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2030 CEO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 성도경 대표
성공하려면 먼저 사람을 얻어야 한다. 구성원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강력한 집단체로 이끌어가려면 매개체가 필요한데, 나는 책과 나눔을 선택했다.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족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여기서 찾았다. 선배로서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세 가지다.
‘왜 사업을 하는가?’를 명확히 하라
‘Why’가 정확하지 않으면 회사도 구성원도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한다. CEO의 사업 목적과 비전이 확고하지 않으면 기업의 영속성은 불가능하고, 구성원 또한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사업에 대한 CEO의 ‘Why’가 올바르고 투명해야 하며, 여기에 구성원들이 공감을 할 때 기업은 성장한다.
도전에 목숨을 걸어라
영위하는 사업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한 가지 일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대충’, ‘적당히’는 구성원 모두가 불행해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 걸고 달려드는 무모한 도전이 필수다.
열정으로 달아오르는 도가니를 만들어라
CEO의 열정은 차별화된 기업문화를 만들고, 이는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면서 기업 성장의 동력이 된다. 기업문화는 단 몇 년간 투자하고 노력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CEO의 가슴과 머리는 항상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야 한다.
문학은 창수북 출판도 창수북
신간 <목단씨의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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