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물든 물결은 애써 전쟁의 총성을 지우느라
태연하기 그지없는 시간
어딜가든 번화가보다는 한적한 외곽을 찾아보려는 내게 민박집 주인이 추천한 곳은 흑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의 변두리 ‘루멜리 페네리’였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두 번 타고 다시 버스를 타는 봄 복잡한 과정이었지만 흑해를 꼭 보겠다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현재진행형이었으니까. 대단한 박애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약자의 편에 있었다.
이 이색적인 마을을 소개하려면 먼저 이스탄불과 바다 이야기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지중해에서 마르마라해협을 타고 이스탄불로 들어온 바닷물은 다시 이스탄불을 동서양으로 갈라놓은 보스포푸스 해협을 타고 올라가 흑해로 흘러든다. 흑해의 관문이자 보스포푸스 해협의 끝자락(유럽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이 바로 ‘루멜리 페네리’다.
루멜리 페네리는 요새이자 불가리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러시아 등지로 가는 화물선들의 흑해 관문과도 같은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등대와 오래된 성벽이 유명하다.
버스 타고 도시 외곽을 투어하는 기분과 전쟁의 아픔(?)을 안고 찾아간 그곳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장노년층의 남자들만이 마을 중심가의 식당과 펍에서 점심과 담배를 즐기고 있는 그 시간, 바다위에서는 수없이 많은 갈매기떼들이 유영하면서 저들만의 한가로운 오후를 즐긴다.
멀리 보스포루스 제3대교로 불리는 야부즈 술탄 셀림 교가 보이는 바닷가 마을은 시간이 정지된 듯 침묵만이 감돈다. 소들이 마을길을 제 맘대로 돌아다니는 곳으로도 유명한 이곳 골목이나 차도에서는 쇠똥의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그 냄새가 적당히 코를 괴롭회기도 한다.
바다는 검은 물결로 출렁이고 갈매기떼들이 장악한 흑해는 어디가 끝인지 수평선만 흐릿하게 보일뿐이다. 그 위로 화물선들이 어디론가를 향하여 북으로 동으로 이동한다. 바다가 끝나는 북쪽 그 어디에선가는 총성이 들리고 폭탄이 터지는 불길이 일고 있겠지만 루멜리 페네리의 바다는 마냥 잔잔하기만 하다. 누군가의 아픔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걸까?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한 식당 야외테이블에서 빵과 커피 그리고 음식을 먹는다. 배가 고팠던 차였지만 왠지 모르게 입맛은 그리 달달하지 않다. TV에서 본 수없이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희생자들의 모습을 지울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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