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못마시는 그가, 술을 팔다
@튀르키예는 인플레이가 심해 최근에는 불과 몇달 새에 가공식품이나 제품의 가격이 두배로 뛰는 일도 흔해졌다고 한다. 공항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려면 인천공항보다 비싸면 비싸지 결코 저렴하지 않다. 환율을 따지만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다만 가공하지 않은 빵이나 과일, 야채들은 여전히 저렴하고 맛도 좋다.
본래 계획은 이스탄불에 도착한 후 이튿날 오후 카짐을 만나러 갈 참이었다. 악사라이로 나가 환전을 한 후 갈라타다리를 갔다가 그만 날이 저물었다. 이튿날 아침 안탈랴로 가야했기에 다녀와서 그를 만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안탈랴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오후! 민박집 바깥주인 이스마엘은 카짐을 만나러가는 길 안내를 자청했다. 사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찾아갈수 있는 불과 10여분도 채 안되는 곳이었지만 친절한 이스마엘의 호의를 굳이 거부할 것 까지는 없었다.
“여기는 모스크, 저기는 버스 정류장, 그리고 저건 교회...., 이제 5분만 더 가면 카짐의 가게가 나와요”
교사 출신의 그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학생들을 대하던 인자함이 베어있어서인지 다정다감하게 차근차근 주변 설명을 해준다.
드디어 카짐의 가게에 도착했다. 예전에도 늘 그랬듯이 역시 카짐은 가게 안의 카운터에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놀란 표정이다. 물론 훤하게 벗겨진 머리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시원하게 소리진다.
“오! 마이 프랜드”
“나이스 미 츄, 하 와 유?”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 후 어깨와 어깨를 포개는 인사를 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보름달 같은 미소를 내뿜었다. 가져간 선물 쵸코파이 한 상자를 건네니 ‘땡큐’를 연발하는 카짐. 영어 소통이 어려운 그와는 예전처럼 그저 눈으로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케한 것은 가게 내부다. 예전에는 온갖 식료품과 과자류, 주류, 생수 등을 판매하던 수퍼마켓이었으니 그야말로 만물상이었다. 그러니 상품 진열도 적당히 혼잡스러웠고 그는 늘 카운터 안쪽의 마루에 앉아 있었다.
달라졌다. 점포는 노란색으로 만든 쇼케이스들 안에 온통 술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퍼마켓에서 주류전문점으로 업태를 바꾼 것이다. 가게는 깔끔하고 형형색색의 주류들이 백화점 안의 매장처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정말 쇼킹한 사실 한 가지. 카짐은 술을 마시지 못한다. 그런데 주류를 판매하는 점포 사장이라니?
아이러니컬 하다고 할 수밖에.
사흘 후 나는 다시 카짐을 찾아갔다. 작별 인사도 하고 민박집 내외와 함께 마실 외인을 사기위해서였다. 민박집 사모님이 전에 마셨던 술이라면서 톡으로 보내준 와인이름 사진을 보여주니 어렵지 않게 찾아왔다. 가격을 물으니 200리라 라고 한다. 나는 그게 실제 판매가격인줄로만 알았다. 셋이서 한병은 모자랄 듯 하여 한 병을 더 달라고 한 후 400리라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그저 웃는 얼굴로 돈을 받으면서 ‘디스카운트’란다. 대체 무슨 뜻인지 영문을 몰라서 옆에 있던 카짐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본래 한 병에 400리라인데 나에게 특별히 할인을 해준거란다. 그것도 절반 가격으로. 그것도 모르고 나는 파격적인 할인가격으로 두 병을 달라고 했으니 대략 난감이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400리라를 더 주려고 했더니 절대 받지 않겠단다. 친구라서 할인을 해준거니 괜찮단다. 서울도 아닌 이스탄불에서 맺은 인연이 이토록 정으로 깊어져있다는 생각에 내심 흐믓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에게 도움은 커녕 민폐만 끼쳤다는 미안함이 여운으로 남았다. 우리는 올해 늦은 가을 다시 보자고 약속을 하면서 네 번째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카짐! 오늘도 술 잘 팔고 있는 거지?”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튀르키예를 걷다6 _ 흑해를 내려다보는 마을 ‘루멜리 페네리’ (4) | 2024.03.31 |
---|---|
봄이 피고 있는 후쿠오카 (0) | 2024.03.23 |
튀르키예를 걷다5-_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 (5) | 2024.02.12 |
튀르키예에서 만난 사람1- 카짐 (0) | 2024.01.19 |
튀르키예를 걷다4 - 그곳에 진정한 휴식이 있었네 (4) | 2024.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