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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5 – 추억

추억으로 가는 ..., 사람 말고 책

 

살다보면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일이 적지 않다. 시간이 흐른 후 지나온 일들을 뒤돌아보면서 그때 좀 더 잘했을 걸’, ‘그 방법밖엔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20여 년 전 이었다. 중국시장의 문이 활짝 열릴 즈음 출판사로부터 집필 제안을 받았다. 중국 여행기와 흡사하되 현지 실물 경제나 문화관련 정보를 재미있게 버무린 책을 써달라는 주문이었다. 오랜 역사와 그 넓은 대륙의 이야기를 그것도 56일 여행 한번 다녀온 내가 어찌 쓸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엔 어렵다는 입장을 표했지만 담당자는 중국 관련 자료는 많으니 정보에 중점을 두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결혼 한 지 몇 년 되지 않은데다 갓 태어난 아이도 있으니 먹고 사는 일을 생각하면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들을 순전히 자료에 의해서 쓴다면 그것은 양심불량인 것이다. 더욱이 소설 지망생이었던 당사자로서는 자칫 훗날 망신살 뻗치는 불장난(?)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사람의 마음이란 늘 흔들린다. 한편으로는 이런 기회를 놓치면 출간의 길은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남모를 욕심과 다른 한편으로는 도전 해보자는 패기로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말았다. 단 조건을 달았다. 며칠이 됐든 적어도 중국을 직접 한 번 더 다녀와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 위주로 써보겠으니 초판 인세 전액을 미리 지급해달라고.

북경과 그 주변은 이미 다녀왔으니 행선지는 경제중심지인 상해로 정했다. 주변의 소주와 항주도 다녀오는 일정으로 일주일 간의 현지 기행을 다녀왔다. 그야말로 수박겉핥기 일 수 밖에 없는 일 이었지만 당시 하루 4만 원 씩 비용을 지급하면서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로부터 우리가 방문한 현지는 물론이고 중국의 변화와 다양한 생활문화에 대한 일야기들을끌어냈다. 귀국 후 당시 청도(칭다오)와 연태(옌타이)에 유통사업으로 진출해있던 기업인 인터뷰를 통해 그의 경험담과 현지 경제 관련 다양한 정보도 보탤 수 있었다.

한마디로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이 쓴 원고였다. <중국 그곳에 가면...뭔가 특별한 일이 있다>는 제목으로 출간됐고 중국여행과 비즈니스 출장을 떠나는 이들의 구매로 인해 한 해 8천 부 이상 판매되는 기대 이상의 기록을 세웠다. 내용은 빈약했으나 당시만 해도 현지를 다녀와서 쓴 생생한 여행기들이 많지 않던 시기였기에 특히 인천공항 서점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책으로 인해 나로서는 에세이를 쓰는 일과 출판계에 한발 더 빨리 접근하는 계기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더 많은 지역을 다녀온 후 썼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컸다. 게다가 당시 출간이라는 무지개를 쫒아서 선인세를 여행경비로 다 써버린 초보 작가의 남모르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으니까.

2천 년 대 들어 해외여행 인구가 급증하면서 여행기를 쓰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여행 작가라는 이름을 내건 작가들도 많이 탄생했고 유명 방송인은 물론이고 트레킹을 즐기거나 이색 취미 또는 사진촬영을 취미로 가진 일반인들도 여행 작가 대열에 합류하는 새로운 트랜드가 나타났다. 유독 작가 입문의 문턱이 높았던 국내 출판계의 콧대가 조금은 내려앉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행기를 쓰는 많은 이들 중 출판으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나 인기작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내세워 책을 펴낸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 중엔 자신의 본업 외 부캐(자신의 본래의 캐릭터와 별도로 새롭게 만들어진 또 다른 캐릭터를 이르는 말)로서의 여행 작가라는 이름에 애착을 갖거나 여행 자체를 즐기면서 추억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작업의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여행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그만한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이리라.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제 서서히 꼬리를 감춰가고 있다, 인천공항의 출국자수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당신이라면 해외든 국내든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기를 에세이로 풀어내보는 것도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또 그것은 단지 자신만의 추억이 아니라 독자들이 새로운 세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익하고 즐거운 일이니 더 가치있는 추억의 산물로 남지않겠는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행서 출간이 동기부여가 되어 전문작가의 길을 걷는다면 그 또한 인생에서 더없이 값진 일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