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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젊음, 도전 그리고 그대1 _ 청년영화감독 전후석

청년 감독, 

영화로 정체성과 철학을 묻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실행으로 옮긴 사람의 차이는 하나다. 뛰어드는 용기다. 적어도 ‘청춘’이라면 성공여부에 상관없이 도전한 그 순간 갈채를 받아도 좋다. 최근 2년 사이에 매스컴에 심심찮게 등장한 이름 세 글자 ‘전후석’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독립영화 감독’ 이라는 새로운 직함이 붙었고 첫 작품 <헤로니모>가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외에도 그는 누군가는 반드시 드러내놓고 화두를 던져야 했을 한인디아스포라의 정체성에 대한 폭넓은 그림을 스크린위에 깔아놓았다는 점에서 시대정신 남다른 청년이다. 최근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를 펴내기도 한 그는 두 번째로 선보일 독립영화 막바지 편집중이다.

글 박창수 기자 

 

 

<헤로니모>에서 끝나지 않은 디아스포라

전후석 감독을 말하려면 일단 영화 헤로니모(Eronimo)’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911월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미국 시민권자로서 영화계 그 어디에서도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던 한인 청년 변호사였다.

한반도 밖에 있는 수많은 코리안들, 그들 중 한사람인 나는 어떤 한국인 인가?’.

이미 오래 전부터 디아스포라(Diaspora)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져놓고 있었던 그였다. 그리고 201512월 호기심에 떠난 쿠바여행의 첫걸음에서 픽업을 나온 한 여인 파트리시아를 만나면서 그는 예고 없던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여인은 1926년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쿠바로 이주해온 한인으로 독립운동가였던 임천택의 손녀였고 그녀의 아버지는 <헤로니모>개봉 시 포스터에 등장한 남성 바로 헤로니모 임(임은조)’이었다. 쿠바 혁명의 주역이자 쿠바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당시 여행에서 이들 3대 가족을 중심으로 현지 한인역사를 듣게 된 그는 2016년 후반 6명의 미국 친구들과 다큐 제작에 나선다. 1년 간 미 전역에서 쿠바 한인 관련 자료를 조사한 뒤, 4개 국 20여개 도시 70여명을 만나 채록했다. 5년 여에 걸쳐 제작된 후 미국 <달라스아시안영화제>를 비롯해 16회에 걸쳐 한국, 미국, 캐나다, 쿠바 등에서 열린 영화제에 참가해 여러 개의 상을 수상했다.

영화<헤로니모>는 감독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던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전 세계에 거주하는 천만 여명의 한인디아스포르들과 우리 국민들에게 이민자, 소수자, 이방인의 삶과 의식 그리고 국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다시하게 하는 따끈따끈한 화두가 됐다.

그리고 2년여의 시간이 흘렸다. 전 감독은 변호사의 자리로 돌아갔을까? 아니다. 그는 이번 여름 두 어달 간 한국에 머물면서 새로운 영화의 편집 작업을 진행했다. 지금 그는 뉴욕에서 마무리 편집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영화 홍보 전략을 세우고 개봉시기 등을 조율중이다.

 

편집중인 두 번째 독립영화 <초선>

두 번째 독립영화는 <초선>이다. 지난해 113일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한인 4명이 당선됐다. 메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주), 앤디 김(뉴저지주), 미셸 박 스틸(캘리포니아주 48선거구), 영김(캘리포니아주 제39선거구)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한인 연방의원은 2018년 앤디 김의 당선까지 19년간 단 한 명도 없었지만 한인 4명이 동시에 미국 연방의회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물론이고 전 세계 한인디아스포라들에게 이슈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두 번째 영화에 대한 기획은 없었다. 전 감독은 타고난 기질이 ()’이 빠른 사람이다. 한인 하원의원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이거다싶은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초선으로 당선된 4인과 캘리포니아 34선거구에서 낙선한 데이비드 김의 일상을 뛰쫒아가며 담기로 했다. 이유는 전 감독이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주시하면서 비롯됐다. 미국 정치계에서 한인 출신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다면 과연 미국인 3명이 회담을 결렬시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왜 한반도의 평화를 제3자인 그들이 쥐고 흔드는가? 에 대한 의문과 불편함이 그로 하여금 다시 메가폰을 잡게 했다. 그로서는 초선의원 이라면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갖는 각각의 목표가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도 적지 않았던 것.

<헤로니모 임>으로 독립영화 제작의 험난한 행로를 경험했던 그였다. 당시 본래 30분 짜리 유튜버 영상으로 제작하고자 했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빠져드는 그 무언가에 휩쌓여 일을 크게 벌이게 되었다. 지난 해 7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초선>은 처음부터 방법을 달리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하고 이에 힘입어 5명의 스텝진을 구성했다. 올해 1월까지 7개월 동안 카메라는 이들 4인을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발걸음을 뒤쫒았다.

미국은 지리적 특성상 사전 스케쥴을 잡고 의원들이 있는 각 주를 찾아가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코로나 19가 발목을 잡았다. 다행이도 미셀 박, 영 김, 데이비드 세 사람은 모두 캘리포니아주에 있었던 데다 영킴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터였고 데이비드는 변호사로서 직업이 같아 편안한 친구였다.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워싱턴에 있는 메릴린 스트릭랜드의원을 촬영하는 일은 부담이 됐다. 뉴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현지 프로듀서를 찾아 일을 맡겨야만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워싱턴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메릴린 스트릭랜드 의원이야말로 감독에게는 한인 디아스포라로서의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컸다. 한국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야말로 정체성에 대해 더 많은 갈등과 고민을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취임식에서 붉은색 저고리와 푸른색 치마의 차림의 한복으로 취임 선서를 한 그녀였다.

편집은 10월 중순경 끝날 예정이다. 여기에 음악을 삽입시키는 일까지 마치면 11월 말 영화는 완성된다. 전 감독은 요즘 미국 현지 영화인들에게서 영화 홍보나 배급을 비롯해 개봉 타이밍 등에 대해 다양한 자문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청년의 첫 자전에세이 <당신의 수식어>

지난 815일 전후석 감독의 자전에세이 <당신의 수식어>가 출간됐다. 30대 청년, 변호사, 영화감독,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 등 여러 개의 수식어를 가진 그가 영화<헤로니모>를 제작하기 훨씬 그 이전부터 한인 디아스포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책에는 어렵게 완성한 헤로니모 필름을 들고 2019년 한국에 들어와 배급사 10여곳을 찾아다녔지만 퇴짜를 맞은 일, 마침 광복절 특집으로 <한국방송>에서 먼저 방송되면서 마침내 국내 극장 개봉에 성공하게 된 일 등 여러 가지 사연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디아스포라오서의 고민과 철학을 하나로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던져주는 메시지가 사뭇 강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왜 변호사가 되었고 또 왜 독립영화에 뛰어 들었는지에 대해 진솔하게 말한다.

전후석 감독은 1984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과정 유학중이었다. 4살 때 귀국해 19살 때까지 무탈하게 서울에서 자랐지만 다시 미국으로 들어갔다. 3때 아버지가 교수 안식년을 맞이하면서 로스앤젤레스로 온가족이 함께 떠난 것. 그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의도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었기에 남모르는 고민도 뒤따랐다.

2003년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에 입학한 후 그는 교양 수업으로 영화의 역사를 들으며 영화이론을 전공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독립영화 감독이 될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애틀에서 열린 재미한인대학생총회에 참석해 미 전역에서 모인 한인 대학생 들과 ‘1992년 엘에이 폭동 사건등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한인 정체성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생길을 로스쿨로 방향 전환했다. 대학 졸업 후엔 연변과학기술대의 홍보 담당을 하면서 한인공동체와 한인 이주 역사도 알게 된다. 전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한인들을 만났다. 뉴욕 코트라지사의 변호사로 일하며 한인신문에 법률정보나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런 20대 젊은 날을 거친 그였기에 쿠바에서 만난 헤로니모 임 가족사는 그로 하여금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더 강한 질문과 궁금증을 던져준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디아스포라는 이민자, 소수자, 이방인으로서 늘 편견과 싸우게 되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이중, 다중 정체성은 다른 문화권과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지금 한국 내 다른 나라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보면서 한국사회는 그들에게 지나치게 한국화를 강요한다고 꼬집는다. 디아스포라들에게 그들만의 정체성이 자유롭게 수용되는 대인배 사회가 되어주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또 자신은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긍정적 상생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담론을 제기하는 한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지금 그가 준비하는 영화 ‘CHOSEN''초선'이라고 읽지만 사실 '조선'이라고도 읽을 수 있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미주 한인사와 한인 정치인의 정체성을 조명하는 다큐다. 이 영화가 미주한인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디아스포라들에게 또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지 사뭇 기대가 되는 시간이다.

 

다른 질문

꽂히면 뛰어드는 스타일입니다

 

인터뷰 내내 전후석 감독은 자신의 생각대로 아는 대로 느끼는 대로 솔직담백하게 말했다. 그는 젊음만큼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두서없이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는 기꺼이 답해줬다.

 

변호사에 이어 영화감독을 활동 중이다. 이 두 가지 직업을 찾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창업을 했을 것 같다. 창업은 신선하면서도 설레이는 도전이 아닌가. 아마도 스토리텔링 플랫폼 같은 벤처를 운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스토리텔링을 할수 있는 그런 플랫폼.

 

전후석이 말하는 전후석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나를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연민도 남달리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영화 헤로니모(Eronimo)’는 꽤 많이 알려진 것 같다. 결과에 만족하는 지?

20191121일 헤로니모 개봉 당일 <겨울왕국2>도 국내에서 개봉됐다. 이 영화는 관객 1500만 명을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독립영화는 만 명만 넘어도 성공작이라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헤로니모는 16,000명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쟁쟁한 영화와 동시에 개봉돼서 이 정도 성적을 낸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부모님을 제외하고 정신적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있게 말하건대 두 분이 있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와 강남순 교수다. 최진석 교수를 만나면서 그 분의 디아스포라에 대한 개념은 내가 느끼던 지리적 개념보다 더 큰 상위적 개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분은 말했다.

나는 디아스포라가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내가 스스로 멈추고 안주하는 순간 나 자신을 깨뜨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주류가 되어 편해지는 순간 나 자신을 부정해서 다시 깨달으려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디아스포라적 삶을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강남순 교수도 마찬가지로 디아스포라적 사고는 지리적 경계에 국한된 걔념이 아니며 인종, 성별, 국적, 계급, 종교, 성적 취향 등 인간을 형성하는 다양한 요소 속에 작동되는 철학적 사유이자 삶의 방식임을 확인 해주었다.

 

영화제작에 이어 이번엔 자전에세이도 출간했다. 집필이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사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크게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다. 다만 일을 하면서 썼기에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변호사, 영화제작에 이어 작가도 됐다. 다음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정해진 틀 안에 갇혀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나는 열정적인 스타일이다. 순간 순간 관심이 꽂히는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뛰어드는 스타일이다. 지금은 두 번째 영화편집중이고 개봉도 준비해야 하기에 아직은 딱히 무엇을 꼭 해보고 싶다거나 도전하겠다는 그런 계획이 없다.

 

얼굴색이 타 보여서인지 젊어서 인지 한결 건강해 보인다. 스포츠를 즐기는 지?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농구와 육상을 많이 한 편이다. 등산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즐기는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혼자서 뛸 수 있는 육상으로 아쉬움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다시 미국으로 출국한다고 들었다. 언제쯤 다시 귀국할 계획인가?

10월 초 출국한다. 제적 진행 중인 영화 <초선>편집을 마무리해야 하고 개봉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당분간은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서 귀국일정은 없다. 한국에서 개봉될 즈음은 다시 오지 않을까 싶다.

 

<초선> 개봉이 기다려진다. 언제쯤으로 예상하는 가?

아마도 내년 초 쯤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총선이 한국에서는 대선이 열린다. 시기적으로 꽤 괜찮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 이 원고는 박창수 작가가 2021년  잡지 <피플365> 가을호에 기고한 글 입니다. 사진 저작권은 전후석 감독에게 있으니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