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마코스메틱계를 연
여성CEO
‘화장품업계의 전설’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화장품 대기업에 입사해 10여년 넘게 교육, 기획, 마케팅등을 두루 경험한 후 의약품 및 화장품 유통 전문회사를 창업했다. 20여 년 간 더마코스메틱 시장을 개척한데 이어 8년 전엔 제조업으로 전환하여 자체브랜드로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청주시 오송생명과학 단지 내 자리한 에이치피엔씨 김홍숙 대표다.
글_박창수 기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 대표라면 화장품업계 산전수전 다 경험했다는 말을 해도 될 자격이 충분하다. 글로벌 화장품회사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이제는 자체브랜드로 미국 수출시장까지 진출했으니 그야말로 업계 산증인이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한 분야만 걸어오기까지 그의 삶속에는 남모르는 울고 웃는 사연도 녹아들었지만 그 못지않게 기술부터 마케팅까지 쌓인 노하우도 남다르다.
김홍숙 대표가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은 30여년 전의 일이다. 1993년 화장품, 의약품, 의약외품 도매유통업 회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20년 뒤 오송생명과학 단지에 동일 분야 제품들을 직접 제조·판매하는 에이치피앤씨를 출발시켰다.
연구·제조·판매·유통·수출 등 화장품 업계의 전 분야를 섭렵한 베테랑은 역시 달랐다, 제조업 시작 7년 만인 2020년 기준 18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화장품과 의약품 의약외품 비중이 각각 50%씩을 차지한다. 기술과 생산능력의 차별화로 자체브랜드인 더마코스메틱 ‘테라비코스(ThelaviCos)’와 병원 전용 화장품 브랜드 ‘라비덤(LAVIDERM)’ 생산 외에도 타 기업의 화장품과 의약품 OEM, ODM을 떠맡고 있다.
오랜 경력만큼이나 치밀함과 완벽성을 중시하는 김 대표의 기질이 이 회사 제품의 품질과 경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원자재 입고부터 반제품까지 항목별 엄격한 1차 검사를 거쳐 완제품 출시까지 깐깐하고 엄격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적용하는 기업으로 알려진다.
2018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주최하는 ‘제44회 국가품질경영대회’에서 서비스 품질 우수업체로 선정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수출유망 중소기업으로 지정에 이어 품질 경영부문에 있어서의 최고상인 기획재정부 장관상과 산업포장까지 수훈했다.
두 번의 좌절 딛고 다시 일어서다
에이치피앤씨는 단기간에 그야말로 급성장한 회사 중 하나다. 그러니 김 대표를 만나는 사람이라면 성공 노하우가 궁금할 법도 하건만 의외로 먼저 하는 질문은 제조업을 왜 늦게 시작했는지, 이전에 돈도 꽤 벌지 않았냐는 것. 20여 년 숨은 세월에 대한 궁금증이다. 하지만 사연을 들으려면 이박삼일도 모자라다는 게 김 대표의 푸념이다. 인생의 쓰디 쓴 고비이기도 했지만 영업을 비롯한 경영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력을 쌓게 한 영광의 상처이기도 했다.
“속상했던 과거이기에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죠. 공들여 키워 놓으면 일방적으로 결별 선언을 하는 사업 파트너들 때문에 내 청춘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허무했죠. 그것도 두 번을 반복했으니까요”
대기업 재직시절 우연한 계기가 그에게 다가왔다. 외국계 P사의 피부과 보습제 품평 결과를 공유하던 당시 국내 시장 진출이 막연했던 P사는 업계 관련 정보와 제품 지식이 풍부한 그에게 국내총판권을 제안했다. 기혼여성은 장기근속이 불가능하던 시대였기에 오로지 일만하며 경력을 쌓아온 터였다. 지금은 일명 ‘더마코스메틱’으로 불리는 화장품 분야가 국내에서는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전문가로 거듭나겠다는 야망을 품고 퇴사 후 1년 동안 발품 팔아가며 시장조사를 거친 후 사업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듬해 창업을 하고 직원 4명을 채용한 후 그들과 함께 전국 영업망 구축에 나섰다.
“의약품도매업으로 시작해서 피부과 의약품과 화장품으로 취급 품목을 늘려나갔어요. 주 거래처가 피부과병원 이었죠. 샘플가방을 메고 병원을 찾아가면 의사들이 하는 말이 ”어디서 뭐하다 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병원 영업은 금녀의 영역이던 시대였으니까요. 어떻게 관계유지를 해야 하는 지 참 막막했어요.”
7년 동안 탄탄한 영업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았다. 그러나 김 대표의 영업에 힘입어 국내 시장 안착에 성공한 P사는 등을 돌렸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결별을 선언했다.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는 수없이 국내 기업 D사와 손을 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더마코스메틱 업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영업 인맥을 확고히 갖춘 상황이니 재도전의 각오로 임했다. 영업총괄만이 아니라 파트너의 생산 공장 구축부터 신제품 개발까지 참여하면서 자신이 쌓아온 노하우를 그야말로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D사 역시 성장기에 들어서자 2006년 그에게 또다시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전의 P사와 마찬가지로 파트너십 관계의 단절을 요구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당한 거예요. 영업할 제품이 없으니 문을 닫으려고도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온 직원들을 실업자로 전락시킬 수는 없었죠. 일부 직원들은 자의적으로 회사를 떠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6명은 자리를 지켜줬어요.”
한우물만 파고든 전문성으로 결실을 맺다
사업 파트너들의 일방적인 배신으로 영업권을 잃으면서 두 번의 큰 위기를 겪은 김홍숙 대표. 개발에 참여하고 시장에 자리매김 시킨 제품을 다 빼앗겼으니 사업 초기 시절로 돌아간 셈이다.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또 그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그냥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외국기업의 병원용 소독제와 화장품을 직접 수입했어요. 이어서 탈모치료제도 론칭했어요. 그렇게 몇 년 지나니 매출은 60억 원대로 올라섰지만 새로운 결정이 필요했습니다. 2010년 즈음 이었어요. 도매 유통업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죠.”
기술, 신제품 개발, 생산, 영업 부문 전반에 걸쳐 베테랑이 되어 있었으니 무리한 욕심이 아니었다. 문제는 자가 생산시설 구축이었다. 2013년 하반기 즈음 지인으로부터 유익한 정보를 얻었다. 신성장산업으로 꼽히는 뷰티·바이오·친환경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생겨난 오송생명과학단지였다. 이미 분양이 끝난 사업 부지이었지만 기한 내에 공장을 설립하지 못해 다시 반환된 터를 재 분양 받는 방법을 택했다. 1,300평의 부지를 확보하면서 화장품 제조업 등록을 한 후 2014년 공장을 완공했다. 유통업에서 제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이었기에 중진공의 사업전환자금을 지원받은 것이 설비구축에 큰 힘이 됐다.
이때부터 화장품전문업체로서의 성장이 본격화됐다. 2014년 (주)에이치피앤씨로 상호를 변경한데 이어 여성친화일촌기업, 경영혁신형 중소기업(MAIN-BIZ) 인증을 받고 오송C&V 센터내에 기업부설연구소도 설립했다. 경험과 노하우가 남달랐기에 자사브랜드 제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듬해 CGMP 인증과 ISO 22716 인증을 획득한 후 종 문제성 피부를 위해 피부친화적인 유효성분만을 담은 더마코스메틱 ‘테라비코스(ThelaviCos)’를 선보였다. 이어서 바로 병원전용 화장품 브랜드인 ‘라비덤(LAVIDERM)’도 출시했다.
이미 구축한 거래처들이 있는 만큼 영업력이 가속화되면서 한 해가 다르게 발전했다. 2017년에는 의약외품 제조업 등록과 함께 KGMP인증을 획득하면서 외용소독제 ‘Enzysept Plus Wipes’를 출시했고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인증도 받았다.
제조업 전환은 더마코스메틱 업계에서 이 회사를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로 변신시켜 놓았다. 2010년대 중 후반에 걸쳐 진행된 변화와 성장은 외형만 봐도 눈부시다는 말 그 자체였다. 년 큰 폭의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2018년 130억 원에 이어 2019년에는 154억 원 그리고 지난해에는 183억 원으로 늘어났다. 생산량 증가에 따라 화장품과 의약품 생산공장 건물을 각각 분리시켜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2019년에는 기존공장 옆 1,500평의 부지를 추가로 확보하여 화장품 공장동을 별도로 완공했다. 사세확장으로 직원 수도 해마다 증가추세다. 2019년 84명에서 지난해엔 93명, 올해는 110명으로 늘어났다.
이 모든 결실은 온전히 일에만 집중하면서 전문노하우를 축적해온 김홍숙 대표가 만들어낸 성공작 즉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걸작이었다.
정도경영을 추구하다
지난 10여 년 간 지속되어온 성장 속에서 김 대표는 한숨 돌릴 여유조차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 와중에도 CEO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경영스타일엔 흔들림이 없었다. 품질의 완벽성과 섬세한 직원관리를 경영의 철칙으로 삼았다.
“신제품 품평회시 연구원들도 발견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완벽한 제품이 나올 때까지 몇 십번이 되더라도 시제품 보완을 거듭합니다. 직원들에게는 까다로운 사장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 제품은 지난 30여 년 간 더마코스메틱 시장을 선도해온 저의 자존심이거든요.”
품질 못지않게 직원관리에도 남다른 교육과 관심을 쏟는다. 직장생활 시절 몇 백 명 직원교육을 담당했던 김 대표다. 회사 안이든 밖이든 ‘누구에게나 인사 먼저 하기’는 가장 강조하는 기본자세다. 방문객 응대나 외부 미팅에서 자사 화장품을 소개할 때는 반드시 한 손은 제품을 받치고 다른 한 손은 브랜드네임이 정면으로 보이도록 하는 게 화장품회사 직원으로서의 품격이라고 가르친다. 그런가하면 여성 CEO로서의 섬세한 감성이 기업의 소통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직원들 눈빛만 봐도 속을 읽을 정도로 감(感이) 뛰어나다. 직원들 표정을 읽고 난 후 상황에 맞게 대화를 끌어내서 위로도 하고 칭찬도 해주는 식이다. 또 사장실 문은 항상 열려있으니 직급에 상관없이 일대일 대화를 원하는 직원들은 찾아오라고 유도한다,
또 한 가지 김 대표가 고집하는 것은 바로 정도경영. 주52시간제를 비롯해 근로환경의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ESG경영까지 요구되는 시점이다. 중소기업 CEO 입장에서는 결코 녹녹치 않은 현실임을 실감한다. 법과 제도를 철저하게 준수하려고 하니 힘든 부분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구석이라도 편법 경영은 절대 안된다는 성격이 강한 그다.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고 비용과 시간이 투자되더라도 공정과 원칙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의지 강한 CEO로 주목받는 김 대표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먹는다고 한다. 더마코스메틱은 이제 모든 화장품업체들이 지향하는 트렌드가 되었고 신제품 주기는 짧아지면서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 올 들어서는 그간 미국시장에서 판매 호조를 보였던 자체브랜드 ‘테라비코스’가 코로나19로 인한 현지 경기침체로 인해 주춤한 상황이다. 다행이도 의료용 멸균제를 비롯한 방역용품의 매출이 늘면서 전년 대비 10% 이상 성장한 약 200억 원대를 예상하고 있다.
더마코스메틱 업계의 선도주자로 불리는 김홍숙 대표. 젊은 세대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으로 온라인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수출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그에게 에이치피앤씨는 지금 막 스타팅을 한 육상선수다. 매출 700억 원대 까지 가능한 생산설비와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증권시장에의 상장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김홍숙 대표의 삶과 경영
여유시간은 어떻게 활용하시는가요?
주말이 되어야 제 시간이 생깁니다. 특별한 운동이나 취미를 즐길 여유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시간과 장소에 제한 받지 않는 독서를 즐기게 되었고 주로 명상 도서를 읽는 편입니다. 그리고 차를 즐겨 마시죠. 인사동 찻집을 가곤 하는데 그곳에 가면 차 문화를 즐기는 분들과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좋아요. 종교가 불교이다 보니 가까이에 조계사가 있어서 방문하곤 합니다. 정신적 휴식을 취하는 힐링을 추구하는 편입니다.
CEO로서 갖춘 남다른 장점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무엇을 빨리 이루려고 서두르지 않습니다. 한 우물만 열심히 파고 들다 보니 지금 제가 제조업 경영인이 되어 있고 또 사업은 지속적으로 확장시켜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중에 포기했다면 그리고 다른 아이템으로 눈을 돌렸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은 하지 않습니다. 무던히 화장품 분야 한 길만 끈기있게 걸어오다 보니 전문성이 축적되었고 그것이 경영자로서의 위치에서 저의 가장 큰 강점이 되고 있다고 보죠.
여성CEO들이 많이 늘었지만 제조업분야에서는 아직도 적은 편입니다. 경영하면서 느낀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회사 설립초기부터 영업을 직접 뛰었습니다. 20여 년 전 이었기에 접근하는 방법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온 철칙 한 가지는 나 스스로 여성이 아니라 남성 영업인들과 똑같은 자세로 병원관계자들과 인간관계를 유지해온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힘들었던 건 사실이죠. 최근 들어서는 중소기업 여성경영인들에게 부여하는 혜택도 많은 여성경제인 모임도 있어서 여성이기에 불리하거나 어렵다는 점은 못 느낍니다. 다만 후배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줍니다. 무늬만 CEO가 되지 말고 경영 일선에서 열정과 전문성을 발휘하는 여성CEO가 되라고요.
최근 들어 화장품업계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하는데 수출시장 개척과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이 관건이라고 여기는지요?
그동안 한국 화장품은 품질도 우수하였지만 아이돌 문화 수출의 혜택을 많이 입은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화장품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의 견제가 심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소재의 개발로 화장품의 기능성을 강화하고, 세계 각국 소비자들의 피부 타입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이에 적합한 제품을 제조, 수출한다면 타국에 비하여 뛰어난 수출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 믿습니다.
사업의 기본은 이익창출 입니다. 부를 축적하게 되면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아직은 제가 큰 돈을 모아놓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회사가 성장단계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어 돈가뭄이지요. 하지만 회사가 더 안정되고 여력이 생기게 되면 사회 환원을 택하고자 합니다. 재단설립을 통해 사회적 기부를 실천하는 방법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먼 훗날 하늘나라 소풍가는 그 날 여비는 필요가 없으니까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부가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원고는 박창수 작가가 2011년 12월 월간 <기업나라>12월 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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